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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우(Palau) 개요 및 역사

팔라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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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 서부에 있는 나라"


위치- 필리핀 남쪽의 태평양(오세아니아)

면적- 488㎢

인구- 21,032명(2012년)

수도-멜레케오크(Melekeok)

언어-영어,미크로네시아어

시차-없음

통화-US달러

정치-공화제

기후-팔라우의 기후는 열대해양성기후로서 고온 다습하며 6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이다. 

6월에서 12월 사이에는 태풍도 찾아온다. 

연평균기온은 27.2℃, 연평균강우량은 3,728㎜이다. 


정식명칭은 팔라우 공화국(Republic of palau)이며, 벨라우(Belau)라고도 한다.

팔라우제도, 손소롤제도 및 메리르섬, 풀로안나섬, 헬렌리프섬, 토비섬 등 약 34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캐롤라인제도의 서쪽 끝에 산재하며, 동쪽으로 미크로네시아, 서쪽으로 필리핀, 남쪽으로 인도네시아의 

이리안자야 주(州)와 접한다.

주민은 주로 팔라우제도의 바벨투아프섬, 코로르섬, 말라칼섬, 펠레리우섬, 아라카베산섬 등에 거주하며,

가장 큰 섬은 바벨투아프섬이다.



■ 자연

필리핀의 남동쪽 북태평양에 위치한 섬들로 구성된 팔라우는 오세아니아주의 한 나라이다.

340개에 달하는 섬들은 지질학적으로 산이 많고 고지대인 주(主)섬 바벨투투아프(Babelthap)에서부터 커다란 암초 울타리로 

둘러싸인 저지대 산호섬들까지 다양하다.   해안선은 1,519㎞에 달한다.

팔라우의 기후는 열대한양성기후로서 고온 다습하며6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이다.

6월부터 12월 사이에는 태풍도 찾아온다.하지만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연평균 기온은 27.2℃ , 연평균 강수량은 3,728㎜이다.

지하자원으로는 목재, 금, 해산물, 해저광물 등이 있다.



■ 주민

원주민인 카나키족이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일본계(系)이며 백인도 2% 있다.

대부분의 팔라우인은 수도인 코로르에 살고 있다. 팔라우인의 인종은 폴리네시아인, 말레이인, 멜라네시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의 종교는 카톨릭, 여호와의 증인 등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교가 80% 정도이고 팔라우의 토착종교인 모뎅게이교(Modekngei Religion)는 팔라우 주민의 20%가 믿고있다.

언어는 '영어'가 팔라우 전체 16개주에 걸쳐 공식어로 사용되고 있고 손소랄주(State of Sonsoral)에서는 손소랄어가 

공식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각주에서는 그 지역 고유의 언어도 사용되고 있다.

 


■ 역사

팔라우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들은 동부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생각되고 있다.

탄소 연대측정법에 의하면 기원전 천 년ㄱ셩의 고대 거주지역이 락 아일랜드에서 보여진다.

초기의 팔라우인들은 여성에 의해 종족과 경제가 유지된 모계와 가모장제도에 의한 사회제도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팔라우를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은 1543년 스페인인 '루이 로페즈 드 빌라로보스' 로 스페인은 1686년 섬에 대한 소유권을

제기했으나 발전이나 식민지화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

1783년에 발생한 영국인 헨리 윌슨 선정의 선박이 울롱 섬 주변에서 난파로 인해 영국과의 접촉이 시작된다.


코로르의 족장인 이베둘(Ibedul)은 윌슨 선장의 선박을 보수하고 아들 레부(Lebuu) 왕자를 영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레부는 영국 도착 직후 천연두로 사망했으나 왕자와 영국이들과의 접촉은 팔라우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다.

영국은 팔라우의 무역 파트너로 스페인에게 재점령 당한 1885년까지 100년이상 무역 상대국이 됐다.

스페인 선교사들은 기독교와 알파벳을 전래했으며 스페인-미국 전쟁의 여파로 세력이 약화된 스페인은 팔라우를

독일에 판매한다.  독일은 1899년 통제권을 획득해 서양에서 전래된 질병으로 인한 주민감소를 방지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그후 팔라우인을 노예로 전락시켜 코코너 농장과 다른 사업들에 참여시킨다.

일본은 팔라우를 1914년부터 2차 대전 종료까지 점령했다.

이 기간은 팔라우의 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한 시기로 무료 공립학교가 개교되고 일본어의 방언이 섬에 전래됐으며 

마을 족장은 일본 식민지 통치자에 의해 영향력을 상실한다.


코로르가 도로 포장과 전기와 파리프를 통한 물의 공급을 통해 현대적인 도시로 발전되고 수 천명이 일본인, 한국인, 오키나와인 노동자가 이주했으며, 전통을 계승하던 패터은 자신의 땅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산산이 파괴됐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은 팔라우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섬들을 통해서 군사 요새화에 주력한다.

2차대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팔라우에 주둔한 일본의 군사시설은 엽합군의 공격목표가 되었으며, 펠렐리우와 앙가우르 섬에서

치열한 전쟁이 계속 되었다.

전후 미국이 팔라우에 대한 행정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마이크로네시아 국가들이 독립에 대한 희망이 고조된다.

1980년 팔라우는 자체적인 법을 제정하고 하루오 레메이익(Haruo Remwliik)이 1981년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1994년 10월 1일 팔라우는 47년간의 트러스트 테리토리(Trust Territory)에서 벗어나 공식적으로 독립국가가 된다.

같은 해에 국제연합에 의해 독립국가로 인정된다.

처음 15년간 5억달러의 경제지원을 약속한 미국이 1994년부터 50년간 유효한 자유협정 협약으로 팔라우 영토의 ⅓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 경제

팔라우는 주로 코코넉, 코프라, 카사바, 고구마 등의 농업과 어업이 주가 되고 있다.

그 외에 조개, 나무, 진주 등의 공예산업도 있다.

관광분야는 연간 18% 가량 성장하고 있으며 주된 수입원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관광분야의 이러한 장기적 전망은 태평양에서의 비행항로의 증설이나 앞서가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번영 등에 힘입어 

크게 지지를 얻고있다. 광광객은 연 8만명 수준이며 국가별 관광객 수는 일본, 타이완, 미국, 한국 순이다.

팔라우의 공식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1993년 미국과 체결한 자유연합 협정에 따라 미국으로 부터 15년간 약 5억 달러의 

원조를 받고있다.

 


■ 사회

팔라우는 기본적으로 모계사회이다.  여성이 추장을 선택하며 토지 소유권도 여성이 가지고 있다.

교육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며, 팔라우의 유일한 대학으로 2년제 'Palau Community College'가 있다.

코로르섬은 도로망이 발달해 있으며, 바벨투아프섬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항만과 각종 문화시설 외에 1개의 종합병원과 2개의 개인병원이 있다.

주요 언론으로는 팔라우 정부에서 월 1회 발간하는 팔라우 가제트(Thw Palau Gazette)가 있고,

괌에서 발간되는 일간지인 퍼시픽 데일리 뉴스(The Pacific Daily News)가 있다.

방송은 국영 AM라디오 방송국(WSAB)과 ICTV케이블 TV가 CNN을 포함한 12개 케이블 채널을 24시간 방송하고 있다.



■ 대한관계

팔라우는 한국과 1995년 3월 정식 수교를 맺었다

주요인사 교류로는 1995년 9월 대사 이장춘이 팔라우 독립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었고, 1996년과 1997년 팔라우 대통령이 


비공식으로 방한하였다.

2002년 2월에는 대통령 토미 레멘게사우가 한국을 방문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팔라우의 한국 교민수는 100여명으로 규모는 적으나 팔라우 내에서 활발한 교민사회로 평가받고 있다.

팔라우에는 2차 세계대전 중에 강제징용 및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와 숨진 한국인을 위한 위령비가 K-B다리 밑에 건립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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